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의, 식, 주 중에서 주생활은 건축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건축은 땅위에 새로운 구조물을 만드는 과정으로 우리가 사는 집, 성당, 절, 학교 등 많은 건축물이 있습니다. 건축물은 일단 살기 편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합니다.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생활하기 불편하다면 건축물로는 좋지 않습니다. 또 지붕이나 기둥을 세울 때 힘을 분산시카는 원리도 알아야 합니다. 지금부터 예술과 과학기술이 어우러지는 건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자연에서 구하기 쉬운 돌, 흙, 나무, 짚 등을 이용하여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모든 집에 들어가는 재료는 나무인데 나무는 돌에 비해 가볍고 가공하기 쉬워 많이 쓰인 재료입니다. 통나무로 만든 집은 스칸디나비아 반도나 러시아에 많이 있는데 바닥은 돌을 깔아 땅의 습기를 차단하고, 그 위에 나무를 이용하여 바닥고 벽을 만들고 굴뚝은 돌로 만듭니다. 더운 나라에서도 나무는 흔히 쓰이는 건축 자재입니다. 나무를 구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나무 기둥을 높이 세운 후 그 위에 집을 짓는데 이렇게 하면 우기 때 습기를 막고 집이 물에 잠기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기둥을 높이 세운 곳에 집을 지었으므로 독충이나 뱀의 침입도 어느 정도 차단할 수 있었습니다. 돌 또는 많이 쓰인 건축 재료입니다. 무겁고 다루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지만 한번 만들어 놓으면 오랜 기간 보존이 가능하므로 돌을 깍고 다듬어 건축물을 짓습니다. 앙코르와트, 콜로세움, 유럽의 성당 등은 돌을 정교하게 깍고 다듬어서 만든 아름다운 건축물로 매년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습니다. 흙을 이용하여 건축을 하기도 합니다. 다만 흙으로만 만들면 무너지기 쉬우므로 흙 속에 짚이나 풀, 동물의 털 등을 넣어 단단하게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건축기술이 발달하면서 흙을 이용한 흙벽돌을 만들어서 집을 지었습니다. 이렇게 벽돌로 집을 지으면 일반 흙으로 지은 집보다 오래 가고 튼튼하게 지을 수 있었습니다.

 건축물은 재료 뿐만 아니라 나라, 민족, 기술 등에 따라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유럽의 건축물은 시대에 따라 형태가 다르게 나타나는데 그리스, 로마, 비잔틴,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양식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스 양식은 기둥의 모양에 따라 도리스, 이오니아, 코린트 양식으로 다시 나눌 수 있습니다. 도리스 식은 기둥이 굵고 직선적입니다. 이오니아 식은 기둥의 꼭대기를 보면 소용돌이 모양 장식이 좌우로 두 개가 있습니다. 코린트 양식은 식물 모양 등으로 화려한 기둥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네스크 양식은 성당을 건축할 때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두 기둥을 잇는 윗부분을 아치형으로 만들었는데 위에서 누르는 힘을 옆으로 분산시키고자 하였습니다. 고딕 양식은 별 다른 꾸밈이 없이 단순하였고, 위로 뻗은 수직적인 모양입니다. 화려한 색유리가 있는 스테인드글라스가 특징입니다. 바로크 양식은 빛과 그림자의 대비가 있어 형태와 색을 확실히 드러나게 만드는 건축양식입니다.

 우리 나라는 서양에 비해 건축물의 높이가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자연물과 조화를 더욱 중요시하였고, 목재가 주된 건축재료였기 때문에 낮게 지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건축물에서도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려던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건축 양식을 더 알고 싶으면 서울 울트라 건축박물관이나 예산에 있는 한국 고건축박물관을 탐방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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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서당은 일반적으로 초등교육을 담당하던 사설 교육기관이었습니다. 해방 이후까지 마을에서 초등교육을 실시하였는데 의무교육기관이 발달함에 따라 서당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서당에서 공부한 후 향교에 들어가 중등 교육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서당에서 직접 중등교육을 실시하기도 하였습니다. 서당 교육의 실질적 목표는 글자를 해독하고 학문의 기초적인 소양을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공부하는 책은 가장 먼저 천자문을 배우고 그 다음으로는 동몽선습, 명심보감, 통감, 소학, 43, 사기 등 차차로 심화 학습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천자문으로 문자 공부를 하고, 소학에서는 성리학적 실천규범을 익혔습니다. 박세무가 지은 동몽선습에서는 한국과 중국의 역사를 배우고 천자문을 끝낸 아이들에게 유교적 도덕과 역사를 배웠습니다. 최세진이 지은 훈몽자회는 실제 사물과 직결된 실자 위주로 편찬하여 한자 교육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제술로는 5언 절구, 7언 절구 등으로 시를 지었고, 습자는 해서를 쓴 다음 행서나 초서를 익혔습니다. 서당식 교육방법은 책의 내용을 읽고 암송하는 암기식, 주입식 교육의 형태였습니다. 능력별 수업도 가능하여 학생들의 개인차를 존중하였으며 진도를 따라 잡지 못하는 학생은 보충학습으로 글을 익힐 수 있도록 지도하였습니다. 지도를 해도 성적이 나쁘거나 행동이 바르지 않은 학생에게는 회초리를 치는 초달로 훈육하였고, 성적 우수자에게는 상장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서당에는 훈장, 접장, 학도가 있었는데 훈장은 가르치는 사람으로 학문은 훈장마다 달랐다고 합니다. 접장은 서당을 먼저 다닌 학생으로 조교 역할을 하였습니다. 학도는 일반 학생으로 훈장과 접장의 지도를 받으며 공부를 하였습니다. 서당 교육은 소규모 교육기관으로 학문적으로 가르칠 능력이 되면 누구나 세울 수 있었습니다. 입학 퇴학도 자유롭고 공부하는 시간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었습니다. 서당 교육은 학생의 능력에 맞는 개별학습의 무학년제로 현재 우리 초등교육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또 유교적 이념을 일반 서민에게까지 전달하여 유교적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서원은 중종 2년 풍기 군수였던 주세붕이 안향을 배향하기 위해 세운 백운동 서원이 시초입니다. 백운동서원은 명종 때 이황의 건의로 소수서원이라는 간판과, 서적이나 노비, 토지 등을 하사받았습니다. 서원은 국가에 공이 있거나 유교의 성현을 모시는 사우의 기능과 학생을 가르치는 사설 교육기관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설립 목적이 제사를 지내고 성현 군자 양성에 있었으나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중등 교육기관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성균관이나 향교가 문묘를 배향하는 곳이라면 서원은 한 사람의 명유와 공신에 대해 제사를 지냈습니다. 서원은 국가에서 사액서원으로 지정되면 토지, 노비, 서책 등을 제공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립교육기관이므로 나라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학풍으로 발전해 나갔습니다. 인조 때에는 서원이 너무 많아져서 허가제로 하였으나 별로 실효성이 없었습니다. 정치적 입장이나 학문적 전통을 잇는 것으로 변질되어 정권 다툼하거나, 군역이나 부역을 회피하는 것, 당쟁의 온상 등의 폐단이 있자 대원군은 많은 서원을 철폐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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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균관은 조선의 국가제도를 정비하고 양반들의 지식 함양을 위해 성리학을 연구하는 교육기관입니다. 나라를 이끌 관료들을 양성하고 석전제 등 의례를 주관하기도 하였습니다. 태조 7년에 건립한 조선의 최고 교육기관으로 오늘날 종합대학교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주로 경학, 제술, 서법, 역사서 등을 공부하였습니다. 경학은 사서인 대학, 중용, 논어, 맹자와 5경인 시경, 서경, 주역, 예기, 춘추 등을 공부합니다. 주자의 주석을 올바른 해석이라고 생각하여 노장사상, 도가사상, 불가사상 등은 배우지 않았습니다. 제술은 여러 가지 문예적인 형식을 공부하는 것으로 사서의, 오경의, 시, 부, 송, 책 등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서법은 해서를 기본으로 익히고, 행서와 초서 등도 배웠습니다. 역사서는 사기, 전한서 등 중국 역사서와 삼국사기, 동국사략 등 우리나라 역사서를 모두 공부했습니다. 역사서가 중요한 이유는 과거의 시험 방식이 제술이므로 유교 경전 못지 않게 중요시되었습니다.

 교육방법은 강독, 문답식 교수법, 토론 등이 있습니다. 강독은 배운 글을 큰 목소리로 읽고 문장의 뜻과 이치를 묻고 답하는 문답식 수업방법을 말합니다. 강의를 받은 뒤에는 서로 토론하고 반복학습을 하였습니다. 시험은 논술시험인 제술시험, 경서 내용을 묻고 대답하도록 하는 강경시험이 있었습니다. 성적평가는 매우 잘함의 대통, 잘함의 통, 보통인 약통, 알고는 있지만 부족한 조통으로 나누어 평가를 하였습니다. 입학 자격은 양반의 자제 중 일정한 자격을 갖춘 자로 소과인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한 사람이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입학 정원이 부족한 경우에는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을 선발하였습니다. 정원은 200명으로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공부를 하였습니다. 생원이나 진사는 정규과정을 이수하는 학생으로 상재생, 다른 학생들은 하재생이라 하여 엄격하게 구분하였습니다. 성균관에 들어가면 나라에서 기숙사와 식사를 제공하고, 공부하는 데 필요한 교재나 일상 물품을 국가에서 무료로 지급해 주었습니다. 군역이나 부역도 면제되고, 과거 시험에서도 성균관 학생들만 치르는 특별 시험도 있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에게는 양현고라는 장학제도를 통해 혜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성균관 안에는 공자를 비롯한 성현의 위패를 모신 문표, 유학 경전을 공부하던 명륜당, 학생들이 거처하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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