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안 랩소디의 인기 - 프레디 머큐리의 재조명

퀸의 성공기를 그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3번 보았습니다.

볼 때마다 어쩌면 그렇게 비슷한 사람으로 캐스팅을 했는지,

아니면 분장을 잘한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는 거의 흡사한 수준이고,

프레디 머큐리도 비슷한 인물로 캐스팅을 잘 한 것 같습니다.

물론 배우들도 퀸의 멤버처럼 연기하느라 무던히도 노력했다고 하니

이 영화가 5백만 관객도 넘어선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런 추세라면 더 많은 관객이 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글을 쓰면서도 유튜브로 퀸의 음악을 듣고 있고,

영화로 인해 퀸을 재조명된 것이 흐뭇합니다.


실은 제 1년 후배가 퀸의 싱어 프레디 머큐리를 너무 좋아하였습니다.

후배도 헬로윈이니 스틸하트 노래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고음의 목소리를 가졌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머큐리가 세상을 떠났다고 했을 때,

후배는 하루 종일 비통해 하던 것이 기억납니다. 

저도 기타를 좋아하기 때문에 퀸의 음악을 듣고 기타로 연습도 하였습니다.

취미로 그룹사운드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퀸의 음악은 기타 치기 대체적으로 좋은 편이어서 연습을 하면 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연습곡으로 퀸의 음악을 가지고 가서 연습곡 선정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싱어가 음이 올라가지 않는다고 난색을 표합니다.

우리의 싱어는 음색이 엄청 곱고 터프한데,

간신히 <라>까지 부를 수 있는 싱어라 퀸의 노래는 연습하지는 못했습니다.

지금은 클래식 기타로 퀸의 노래 일부분을 치며 취미생활 이어가고 있습니다.


머큐리는 인종 차별을 받을 수 있는 아시아의 인도계 사람인데다

영국으로 이민 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차별과 멸시속에서도 자신의 음악성을

마음껏 펼친 그였기에 이 영화가 사랑을 받은 것은 아닌가 합니다.

특히 비주류였고 양성애자였지만 자신의 내면과 외부의 멸시를

이겨내는 장면에서 더욱 감동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친구였던 엘튼 존은 

"머큐리가 영국에서 태어난 유럽인이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높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정도로 머큐리는 퀸의 음악으로는 성공했지만

태생적 한계에가 양성애까지 있었으니 언론의 좋은 먹이감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더욱 외톨이가 되며 심적으로 큰 부담이 있었을 것입니다.

에이즈로 인해 죽어가면서도 음악적 열기가 식지 않았던 그가

만약 지금 살아있다면 지금도 세계 음악 시장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이 영화를 보며 또 생각난 것이 마이클 잭슨입니다.

흑인이라는 핸드캡을 딛고 팝의 제왕이 된 것이 프레디 머큐리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작은 소망 하나 - 마이클 잭슨의 업적도 영화로 제작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음악도 함께 감상하며 마이클 잭슨의 추억을 되살리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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