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에는 1987년 전국민의 모금운동을 통해 건립한 독립기념관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을 포함한 국난 극복사와 국가발전사에 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겨레의 탑은 하늘 높이 솟아 새의 날개짓을 표현하였고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겨레의 탑은 우리 나라가 더욱 발전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그 다음 볼 수 있는 것은 태극기가 많이 게양된 장소인데 총 815개의 태극기가 있습니다. 815개의 태극기는 우리나라 광복절인 815일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보이는 것이 겨레의 집입니다. 고려시대 건축양식을 사용한 건물로 배흘림 양식과 맞배지붕 양식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독립기념관에서 볼 수 있는 인물 중 제 고향인 홍성과 관련된 인물 한용운과 김좌진 장군을 볼 수 있습니다. 가까운 예산 지방의 윤봉길 의사도 볼 수 있고, 공주 마곡사에서 은거했던 김구선생님도 볼 수 있습니다. 한용운은 님의 침묵이라는 시로 유명한 시인이자 스님입니다. 그리고 독립운동으로 한 평생을 보내셨습니다. 1895년 일본의 낭인들이 조선의 명성황후를 무참히 살해하자 전국에서는 을미의병들이 일어났습니다. 한용운의 아버지도 을미의병활동에 참가하였으나 만해가 8살일 때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만해도 성인이 되어 아버지처럼 의병활동을 하고 나라를 빼앗기자 독립운동을 하였습니다. 19193.1운동 시 기미독립선언서 뒷부분의 공약삼장을 직접 작성하고 행동강령을 33인 대표에게 말했습니다. 변호사를 부르지 말고 사식을 취하지 말고 보석을 요구하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3.1운동 후 옥고를 치르고 나와서도 독립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습니다. 만해의 시 중 어린 나이에 잃은 아버지에 대한 시 당신을 보았습니다.에서 외로움과 그리움을 절절하게 표현하였습니다

 김좌진 장군의 호는 백야이고 충남 홍성 갈산 출신입니다. 어려서부터 똑똑하고 전쟁놀이를 즐겨 하였습니다. 15세 때 집안의 노복들 30여명을 불러, 종문서를 불태우고 논과 밭을 골고루 나눠주고, 서울로 올라가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1907년에 호명학교를 세우고 홍성에서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군자금 조달 관련 때문에 투옥되었으며 나와서 광복단에 가입하여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습니다. 일본의 눈을 피하고자 만주로 건너가서 대한정의단에 가입하고 나중에 사령관으로 추대되었습니다. 다시 북로군정서군으로 개칭하고 총사령관이 되어 항일 투쟁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1920년 일본이 독립군을 토벌하러 왔다가 청산리에서 김좌진의 북로군정서군과 홍범도 부대가 힘을 합쳐 일본군 3,000여명을 살상하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후 많은 독립군 양성과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나 1930년 공산주의자 박상실의 흉탄에 맞아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지금 홍성 갈산에 가시면 김좌진 장군의 생가가 있으니 방문하시면 좋습니다.

 윤봉길 의사는 23세의 나이에 김구선생님이 주도하는 한인애국단원이 되어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고 이를 기념하던 행사에 폭탄을 던져 많은 일본인을 살상시켰습니다. 이 일로 중국의 장제스는 중국의 30만 대군이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인 한 사람이 해냈다고 치켜 세웠고, 상해임시정부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윤봉길 의사는 일본의 재판을 받고 그만 25세의 한참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충남 예산에 가면 윤봉길 의사를 모신 충의사가 있고 그 옆에는 기념관이 있으니 방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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